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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읽기, 장자] 우물에 매달린다면 어떻게 바다에 이를 수 있겠는가?

삶의 지혜를 얻는 책 (영감의 샘)

by 비아토(viator2912) 2021. 9. 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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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세상은 한 권의 책이며, 자기 자신에게로 여행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것과 같다고 류시화 시인은 말한다.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행보다 더 값진 것은 없으리라. 

가끔은 순수한 침묵 위에 떠있는 구름을 걷고, 그 너머의 절대 침묵의 세계와 하나가 되자. 하루에 1분이라도 안과 밖의 소음을 끄고 그 순수한 침묵과 마주한다면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 삶의 중심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장자, 도를 말하다

장자, 절대자유와 사고의 유연성을 일깨우는 중국고전을 통해 자아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자연적인 존재가 되라. 자연적인 것에 어떤 목적도 부여하지 말라. 그대가 누구이길래 존재계 전체가 그대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장자의 메시지는 때론 위험하기 까기 하다. 자연스러운 것, 노력 없이 자연스러운 것,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장자가 주고자 하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당신의 마음이 방해할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인위적인 것이며, 사회에 의해서 그대에게 심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크게 들여 마시며 명상을 해보자. 당신의 생각을 깨드려줄 깊은 이해를 위한 돕기 위한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워내자. 오쇼를 통해 듣는 장자의 가르침을 3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은 이론이 아니므로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삶은 하나의 신비이며 그대 자신이 신비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삶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지 말라. 삶을 문제로 받아들이면 그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이미 빗나간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 길의 어느 지점, 어느 이론에 그대는 매달릴 것이다. 일단 매달리면 버리기가 실로 어렵다. 누군가 당신의 이론이 반대하면 에고가 개입된다. 그대가 틀렸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그대에 대한 그럴듯한 이미지가 무너진다. 그대는 틀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일에도 싸우고 논쟁한다. 그러나 모든 싸움에 밑바탕에는 그대가 삶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해 에고가 강화된다. 따라서 누군가 머릿속 지식이 쓸모가 없다고 말하면 에고는 귀를 막는다. 그것은 위험한 발언이기 때문에 결코 귀담아듣지 않는다. 

마음은 말한다. 갑은 갑이고 을은 을이며, 갑은 결코 을일 수 없다고. 마음은 논리적이지만, 삶은 모순적이다. 그래서 그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삶과 싸우지 말라.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존재 전체로 뛰어들어 삶을 살라. 과학에는 머리가 필요하고 예술에는 가슴이 필요하지만 삶에는 존재 전체가 필요하다. 존재 전체로 움직일때 우주와 만날 수 있다. 

 

둘째, 당신의 우물,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라

인간의 마음은 항상 어떤 것에 조건 지워져 있다. 존재는 물들지 않은 순수 상태 그대로이지만 마음은 늘 조건화 되는 과정에 있다.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서 또 지나온 경험에 의해서 마음은 항상 길들여진다.

그래서 개구리는 개구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우물 속에 사는 개구리는 우물이 그의 우주다. 그대 역시 그대만의 우물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비록 눈에 안 보일 지라도 거기 하나의 울타리가 있다. 그리고 눈에 안 보일 때 그것은 더욱 위험하다. 눈에 보이는 울타리는 뛰어넘기 쉽지만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그것이 존재하는 여부도 모르기 때문에 그대는 자신도 모르게 그 안에 갇힌다. 그대의 우물은 어딜 가나 그대를 둘러싼다. 어딜 가나 그대는 자신의 우물을 갖고 다니며 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통해 본다. 

모든 해석이 이런 조건 지워진 상태에서 나온다. 진리를 알고 실체를 이해하려는 사람은 조건 지워지지 않은 사람이며 어떤 이론과 사상에도 물들지 않은 사람이다. 진리 앞에선 어떤 옷도, 어떤 신발도 벗어던져야 한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순수 존재 상태 그대로 다가가야 한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물을 벗어날 수 있다. 우물에 매달린다면 어떻게 바다에 이를 수 있겠는가?

 

셋째, 진정으로 깨어있는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찾으라. 

인간의 마음은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마음 때문에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원한다. 그래야 자신이 잘나 보이는 것이다. 

인도 속담에 ‘낙타는 결코 히말라야 근처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낙타는 사막에서 사는 것이다. 높은 산이 없는 사막에서는 낙타 자신이 히말라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히말라야 근처로 가면 낙타의 에고가 상처 입는다. 마찬가지로 그대는 언제나 달아난다. 에고가 상처 입을 염려가 없는 곳으로. 그대는 사막 같은 곳을 좋아한다. 적어도 그곳에선 그대가 뛰어난 인물이니까.

신에게로 다가서고자 한다면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찾으라. 장자 같은 도의 사람을 찾으라. 도의 사람은 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현명함이 무엇인지, 지혜가 무엇이고,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넓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를 통해 깨닫는다. 진정으로 깨어 있고 존재 전체로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값지다.

문화의 차이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여행을 하듯이, 옛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는 방향에 있다. 마음에 파동이 일어나는 깨달음을 통해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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